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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와칼럼

    설교방송

    주일설교
    2014.01.16 23:22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조회 수 146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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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2014-01-12
    설교구분 주일대예배
    본문 마6:30-34
    설교자 이현기 목사

    말씀: 6:30-34

    제목: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오늘 말씀은 경건의 시간 말씀을 따르지 않고, 올해 우리 행복한제자교회 약속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17 MT에서 나누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곳에서는 길게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오늘 말씀을 나누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또 최근 히브리서 말씀은 제가 홈페이지에 잘 설명해서 올렸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올해 우리 행복한 제자교회의 약속의 말씀은 조금 전에 읽은 대로 마태복음6: 33절입니다.

    올해 약속의 말씀을 주시도록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지난 주일 아침 시66편 경건의 시간을 하면서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고 이 두려움이 우리의 사역에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의 산, 두려움, 염려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우연히 마태복음 6장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는데, 바로 우리의 두려움, 염려문제에 대해서 주님께서 답을 주시는 말씀이 마태복음 6장 말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올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마태복음 6:33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6: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6: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우리가 근심 걱정이 많을 때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걱정이 태산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태산 같은 염려가 평지가 되지 못한다면 밖에 있는 태산도 평지가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대중화시킨 노만 빈센트 필 박사에게 한 교인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목사님 내게는 문제가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다닙니다. 문제없는 날이 없습니다.” 그때 노만 빈센트 필 박사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문제가 전혀 없는 한 마을을 알고 있습니다. 거기는 만 오천 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그 마을에는 정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자 그 교인이 그 마을을 좀 가보고 싶다고 해서 약도를 친절하게 그려 주었다는데 힘들게 꼬부랑꼬부랑한 길을 겨우 찾아 갔더니 글쎄 1 5천구가 누워있는 공동묘지였답니다.

     

    2014년 새해를 맞자마자 태산 같은 염려거리들이 하나 둘 다시 찾아오지 않던가요? 만일 우리 안에 쌓여져 가는 걱정 염려를 몰아내지 않는 한 외부에 있는 큰 산 앞에 우리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함께 걱정의 태산을 평지로 만드는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30절부터 함께 읽었지만 잘 이해하기 위해 내용 연결이 시작되는 19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두 종류의 보물에 대해 먼저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6:19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다가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며,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간다.

    6:20 그러므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는 일이 없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 가지도 못한다.

    6:21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19-24절은 모두 돈에 관한 말씀입니다. 돈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주 분명하게 돈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24절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은 문자적으로 맘몬’(Mammon)인데, 이는 고대 카르타고의 부의 신이었다고 합니다.

     

    두 종류의 보물이란 하늘에 쌓은 보물과 땅에 쌓은 보물입니다. 보물은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그것은 돈이나 금, 보석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땅이나 건물, 자동차나 가구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보물은 어떤 형태로든 물질일 것입니다. 이것을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하늘에도 부가 있고 땅에도 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땅의 부는 언젠가는 썩어 버리고 반드시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하늘나라에 쌓아두는 부는 썩지 않으며 누가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땅의 부는 일시적이며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부는 영원하며 안전합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부, 보물()의 보관 장소입니다. 우리의 보물을 옳은 장소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부를 추구하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당하며 중요하지만 어떤 부를 추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추구한다는 것은 마음을 그 쪽에 고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21절에서 말씀합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두 가지 부에 대한 말씀을 바로 이어서 두 가지 마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요,

    6: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눈은 영혼의 창입니다. 사람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하면이라는 단어는 일심의라는 뜻이고 너그럽고 마음이 열려있고 따뜻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나쁜은 욕심 많고 인색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은 보이는 눈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눈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눈이란 마음의 눈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눈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건강한 눈이고 하나는 병든 눈입니다. 천국의 부를 바라보는 눈은 건강한 눈입니다. 세상의 부를 바라보는 눈은 병든 눈입니다. 만일 마음의 눈으로 하늘에 있는 부를 소망하며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산다면 주님과 가까이 동행하게 될 것이며 내 영혼이 건강하게 될 것이며 빛 가운데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의 마음이 이 땅의 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어두움의 그림자가 우리를 덮을 것입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향을 쉽게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탐욕, 불평과 불만, 염려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마음이 굳어지게 되며 서서히 부패해져 갈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질이 나의 주인이 되어 내 삶을 통제하고 이끌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내 삶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인가? 세상의 물질인가? 아니면 주님인가? 양자택일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로 이어서 두 종류의 주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6: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계신 말씀입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물질도 섬기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는 회색지대란 없다고 못 박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은 썩고 불안전하다. 그것에 마음을 두고 살면 네 삶이 병들고 어두워지고 인생의 길을 잃게 될 것이다. 네가 나를 주인으로 섬긴다면 네 삶이 건강하게 되고 빛 가운데서 가야 할 길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재물을 주인으로 삼을지 나를 주인으로 삼을지 둘 중 하나를 너희가 분명히 결정하길 바란다.’

     

    주님은 두 가지 종류의 주인에 대해 말씀하시고 어느 것을 선택할지 묻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아마 이렇게 하소연할지 모릅니다. ‘좋습니다. 주님, 제가 이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재물이 있어야 먹고 입고 사는데 걱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잖아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 읽으시고 말씀하십니다.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6: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조금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이그러므로는 지금까지 나누었던 모든 말씀을 가지고 이제 결론짓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나눈 말씀은 두 보물, 두 마음, 두 주인에 대한 내용이었죠. ‘하늘에 있는 보물과 땅에 있는 보물’, ‘건강한 눈과 병든 눈’, ‘재물과 주님, 누구를 섬길 것인가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만일 지금까지의 말씀을 이해하고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겠노라 결심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말씀해 주십니다.

     

    ‘걱정하지 마라. 생명이 물질보다 중요하지 않느냐? 너의 주인은 가장 소중한 네 생명을 돌보시는 분, 바로 너의 아버지시다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세 가지 예를 들어 생생하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보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내일 땔감으로 던져질 들풀을..우리는 이런 것에 거의 관심을 두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이런 것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야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리고 한 마디, 뒤통수에 꿀밤을 먹이시는 것 같이, 정신 차리라는 듯이 말씀을 하시죠.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 그러면 염려와 믿음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요? 염려와 믿음의 크기는 반비례입니다. 염려가 클수록 믿음은 적어집니다. 또 염려는 또 나와 하나님과의 거리를 보여 줍니다. 염려가 많을수록 하나님과는 멀어집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계속 염려한다면 믿음이 적은 자입니다. 믿음이 적다는 말은 주님을 믿긴 하지만 주님이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이 부족하거나 의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염려는 우리 모두가 때때로 빠져 버리는 작은 약점이 아니라 엄격히 금지된 죄악이다. 마운스는 염려는 실천적 무신론이며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염려는 불필요합니다. 염려는 무익합니다. 염려는 눈 먼 것입니다. 염려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우리가 하나님을 첫 번째 자리에 모시지 않고 이 모든 것’(30)을 가중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러면 우리 속에서 날마다 잡초와 같이 자라 산을 이루는 염려거리들....구체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염려는 생각의 쓰레기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염려란 쓰레기통에 넣어야 불필요한 생각들이죠. 주님께서는 먼저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걱정의 쓰레기를 버리라는 말씀이죠. 보통 쓰레기를 버릴 때는 먼저 재활용을 위해 분리수거를 하고 아무 쓸모없는 것은 쓰레기봉투에 다 모아 쓰레기차에 던져 버립니다. 걱정이나 염려는 분리 수거해서 재활용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염려는 모아서 쓰레기봉투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쓰레기봉투를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나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말씀 안에 담아서 버리는 것이죠. 성경에는 염려를 담을 든든한 쓰레기봉투들이 있습니다.

     

    벧전5:7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4:7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적힌 봉투 안에 모든 염려 쓰레기들을 넣어서 그냥 들고 계시지 말고 주님 앞에 갖다 놓으십시오.

     

    ‘하나님, 이 말씀 속에 나의 이런 저런 염려를 넣겠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갖다 놓겠습니다.’

     

    주님은 기꺼이 그것들을 받아 처리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 뿐 아니라 염려 걱정 두려움 같은 쓰레기를 처리하시는 일에 전문가이십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혹시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넣었다가 뭔가 필요한 것이 생각나 다시 찾아오신 일이 있으신가요? 별로 없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주 그런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염려 쓰레기를 다시 찾아오는 것이죠.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그 쓰레기봉투를 다시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로우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고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들에 피는 백합화, 공중에 나는 새, 내일 아궁이에 땔감을 사용될 들풀까지 하나님은 보살피시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이미 다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종종 나의 모든 염려를 말씀의 봉투에 넣어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께서 나를 돌보실 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또 다시 염려 쓰레기봉투를 열고 있는 자신을 봅니다. 그 원인이 뭘까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염려를 생각하고 그 가운데 빠져 있으면서 다음 단계로 가지 않으면 쓰레기 처리가 제대로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다음 단계란 바로 이것입니다.

     

    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우리는 보통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없애달라고 외치기만 하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걱정거리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지만하나님, 이 문제에 대해 제가 하기를 원하는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잘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입은 열려 있는데 귀는 닫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 두려움 때문에 기도는 하지만 계속 그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말만 하지 귀를 닫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번 기도를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모든 염려를 벧전 5:7에 말씀에 담아 주님께 내려놓습니다. 이제 주님,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될까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습니까? 가족 간의 문제로 인한 염려와 두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이 상황에서 순종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무엇입니까?’ 물어 보십시오. 염려를 멈추는 가장 비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염려거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염려란 생각으로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풀어볼 수 있습니다. ‘정말 염려하고 싶거든 염려할 가치가 있는 문제로 염려해라. 내가 정말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고 있을까 이런 일로 염려해라!’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내일을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주님은 내일을 생각하고 계획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일은 내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토머스 카일라일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먼 곳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똑똑하게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의 손자 제임스 테일러와 그의 아내 앨리스는 3대를 이어 중국 선교사로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후난성이란 중국 내지 깊숙한 곳에서 선교활동을 했지만 그들의 네 아이들은 교육문제 때문에 1,600Km나 떨어진 산동성에 위치한 학교에 다녔고 연로했던 아버지도 아이들과 함께 그 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 2차 세계대전으로 갑자기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대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일본군들이 후난성에 진입하자 테일러 부부는 살아남기 위해 서쪽 변방에 있는 더 머나먼 내륙 마을로 피신했고 그 당시 교통 통신이 발달되지 않아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1,600Km 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의 소식은 감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습으로 매일같이 피해 다녀야 하는 고통, 전염병, 그리고 가뭄 등으로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일본군의 만행은 너무나 가슴을 떨리게 했습니다. 이제 어른스러워 가는 열 네 살의 큰 딸 캐슬린, 둘째 열 살 제이미, 셋째 아홉 살 메리, 막내 여덟살 존, 그리고 네 아이들의 할아버지를 생각할 때 그야말로 절박한 심정으로 그들의 안전을 위해 엄마 앨리스는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앨리스에게 그녀의 소녀 시절 때 한 목사님이 이야기해 주신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목사님은 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이 구절을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앨리스,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일을 네가 소중히 생각하면 그 분도 네게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겨 주신단다.’

     

    그 목사님은 자기가 가르치던 10대들에게 늘 이 점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 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하나님께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을 선교사로 보내신 이 땅의 중국인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이들이었습니다. 비록 아이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지만 그 이후 그 녀는 자신에게 소중한 자녀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자신은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것, 즉 중국인들에게 복음 전하고 그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했습니다. 폭탄 세례, 기근, 죽음 등의 무수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어떤 때는 아이들이 있던 학교에서 모든 사람들이 모조리 생포되어 집단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는 소문도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앨리스는 끝까지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중국인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어느 듯 길고도 힘든 5년 반의 세월이 흘렀고 어느 날 일본군 항복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순식간에 군중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고 이어 또 다시 대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교통과 통신은 또 마비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고 아이들의 소식은 더더욱 감감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사역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희미하게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점점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상상이었을까?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들리는 목소리였습니다. 순간 훌쩍 커 버린 아이들이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왔습니다. “엄마, 아빠, 우리가 돌아왔어요!”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들도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전하게 돌봐 주셨습니다. 더구나 어린 딸 제이미는 연로한 할아버지까지 돌보았고 나중 커서 싱가폴에 있는 선교단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염려는 우리의 삶을 조각 조각내어 분열시킵니다. 우리를 사방에서 잡아당겨 중심을 잃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 놓인 큰 산을 오르기도 전에 낙심하게 만들고 지치게 만들어 버립니다. 염려라는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나요? 먼저 버리는 것입니다. 말씀의 봉투에 넣어서....

     

    다음에는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주님께 맡긴 것은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귀를 열어 그 분의 뜻을 구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버리는 것...염려의 쓰레기,

     

    믿는 것... 되찾지 않음,

     

    따르는 것..하나님의 뜻

     

    내일 일을 염려하기보다 오늘 내가 주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가를 염려하십시오. 오늘 내가 하나님께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일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늘과 내일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염려는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새해에는 염려의 쓰레기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박찬성 2014.02.07 08:21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아멘^^
      보물을 찾아서 보물선이신 예수님배를 타고 2014년 항해해야지요
      저만 그런거 아니죠 다들 함께 가는거죠 행복한 제자교회 부두에서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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