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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와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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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설교
    2014.03.09 19:58

    오병이어의 기적

    조회 수 307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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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2014-03-09
    설교구분 주일대예배
    본문 막6:30-44
    설교자 이현기 목사

    말씀: 6:30-44

    제목: 오병이어의 기적

     

    둘씩 짝을 이룬 제자들은 가버나움으로 귀환하여 예수님께로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한 번도 한적한 곳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먹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여행으로 지쳐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약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은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몸은 쉬어야 하고 정신은 원기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간헐적으로 쉬면서 갱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쉴 곳을 찾으셨습니다. 큰 목표를 성취하고 싶은 사람은 성공과 정력을 위해 이 같은 건강한 리듬(일 그리고 쉼)이 필요합니다.

     

    쉼은 반성과 묵상, 대화, 독서, 기도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는 일하는 중에 시간을 조금 내어 몽상에 잠겨 보는 것도 좋습니다. 숲속을 걷는다든지 별들을 응시하여 본다든지 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보고, 하나님만이 들으실 수 있는 곳에서 찬양의 기도를 드려 보십시오.

     

    저는 가끔 정자 바닷가에 가서 바람도 쐬고, 파도 소리도 듣고 밤하늘의 별도 처다 보고 하면 피로도 풀리고 정신적으로 힐링이 되는 것을 느낍니다. 가끔씩 돈 적게 드는 그런 여행도 계획해서 하면 좋겠습니다. 차주 토요일 이기대 걷기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도착하여 보니, 큰 무리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제자들과만 함께 있고 싶었지만 이 곤궁한 무리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대게 우리는 우리의 스케줄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귀찮게 생각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이런 방해를 못 참아 하시지 않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그들을 환영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가 나오는 것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시고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양은 쉽게 흩어져 길을 잃고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겐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목자가 필요했다.

     

    하나님은 종종 자기 백성을 목자가 사랑으로 양육하고 인도해야 할 필요가 있는 양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양은 음식과 보호와 인도를 위해 전적으로 목자를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 무리는 선한 목자의 인도와 보호와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잃은 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휴식을 가지고 싶었지만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듣고자 원하는 자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이용하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소서라고 말씀드린다. 분명히 제자들은 그들이 이 여행을 떠날 때 기대했던 대로 이제 그만 좀 쉬고 싶었을 것이다. 제자들이 무리를 보내자고 말씀드린 것은 그 사람들의 필요에 대해서 깊이 배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음식을 얻으려면 해지기 전에 도시에 도착해야만 했습니다.

    1.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자들을 몹시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화나게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잠깐만, 우리는 지금 여기 쉬려고 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제 우리더러 이 오천명의 사람들을 먹이라구예수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일까? 제자들의 의심은 하나님을 향한 모세의 간구를 기억나게 한다. “이 백성에게 줄 고기를 어디서 얻으리이까?(11:13). 제자들의 한 마디로 생각은 그것은 불가능합니다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실 수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일이 너무나 엄청나다는 전제에 사로잡힌 나머지 하나님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에서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능력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재빨리 계산해 보니 이 사람들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일 삯이니까 8개월치 임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돈과 음식)을 강조하면서 그것은 불가능합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저 사람들의 배고픔의 문제는 저들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우리의 문제 나의 책임은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길때 누구의 책임으로 돌립니까?

    보통 나라의 문제는 정부 지도자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가정의 경우는 부모들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교회의 경우는 교회 목사님 장로님들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물론 그렇게 지도자들의 책임일수 있습니다. 환경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주님은 빈들에서 많은 무리들의 배고픔의 문제를 바라보실때에나의 책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에게 책임을 돌리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이 시대는 책임을 지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빈들같은 상황에서 어렵고 불안한 상황에서나의 책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먼저 필요합니다. 물질의 빈들,관계의 빈들,삶의 빈들에서 먼저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공격하고 누구를 탓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먼저 이 상황에서 주님은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우리 각자가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갖기를 원하십니다.

     

    가정에서 책임지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직장에서 책임지는 직장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책임지는 사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문제가 생기고 힘든 곳에 내가 먼저 책임지려고 할때 감사의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남을 원망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누구를 탓하고 하면 그곳에서는 싸움만 일어나게 됩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책임지는 삶을 사셨습니다.

    빈들에 모인 그들이 배가 고프고 밥을 먹어야 하는 문제를 책임 있게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것은 먼저 마음으로부터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빈들에서 굶주린 군중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큰 무리를 보시고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오늘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시고 있습니까? 예수님은불쌍히 여기사라고 하십니다. 이 단어에 대한 영어성경은 “compassion"입니다. 이 단어는함께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즉 공감하다의 의미입니다. 빈들에 있는 다수의 가난하고 고통받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셨습니다. 주님은 그 고통을 느끼시면서 그냥 느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의 마음을 갖고 책임지시기를 소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너희들도 그 고통을 느끼며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십니다.

    오늘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주님은 동일한 책임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돈이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돈이 없고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고 새 소망을 갖은 주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을 향하여 더 어려운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에게 주어야 하고 그들을 섬겨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2.주님께 작은 것이라도 드려지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가서 엄청난 돈으로 떡을 사다 먹여야 하느냐는 반문에 예수님은 우선 그들이 가진 것을 확인하라고 합니다.

    요한은 한 아이의 도시락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찾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리들이 먹을 것을 준배해 오지 못했거나 아니면 서로 나누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께 비관적으로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6:9)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것으로는 배고픈 한 아이나 먹일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전형적인 답변이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너희에게 있는지 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말합니까? ”주님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하십니다. 대부분 우리는 나는 아무것도 주님께 드릴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찾아보면 우리에게 무언가 있을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작고 보잘것없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빈들에서의 기적은 한 어린아이의 작은 희생이 도구가 된 것입니다. 큰 희생이 아니라 작은 희생이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어린아이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그런데 그것을 자기가 먹지 않고 예수님에게 바쳤습니다.이것이 위대한 것입니다.작은 희생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3.우리의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무슨 일을 하시려는지 설명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푸른 잔디위에 백 명이나 오십명씩 떼를 지어 앉히라고 명령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 몰랐지만 명령에 순종하여 사람들을 50명씩, 100명씩 떼를 지어 앉게 하였다. 만약에 제자들의 입장에서이렇게 작은 음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고 자기 생각으로 불순종하였다고 가정하여 보십시오. 우리의 삶에 기적을 가져오는 지름길이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주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만드십니다. 주님은 순종하는 곳에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중요한 것은 처음도 순종하여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끝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순종할 때 주님이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이제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해 미리 감사하신 후 떡을 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실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감사와 축복의 기도였습니다. 감사는 놀라운 기적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 분이 처음 받은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지만 그의 손에서 그것은 넘치도록 충분한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기여가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우리가 그분께 드리는 것이 무엇이든 재능이든 시간이든 물질이든 예수님은 그것을 사용하실 수 있고 또 배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기적을 믿지 않는다. 전형적이고 자연스런 과정을 믿는 회의주의자들에게 그렇게 적은 음식으로 오천 명의 배고픈 사람들을 먹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날 그 산마루에 있었던 사람들 역시 대부분 그 기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룹으로 모여서 저녁 식사를 받아 깨끗이 먹어 치웠을 뿐입니다. 제자들만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았습니다.

     

    과학적인 물질주의 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기적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것과 동일한 능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 기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대게 예수님의 부활도 믿기 힘들어 한다. 우리가 그 분의 부활을 받아들일 때 물고기와 떡을 배가시킨 것과 같은 기적이 불가능하게 보이지 않게 된다.

     

    4.할 수 있는 것은 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구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천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라고 요구하셨을 때, 그들은 놀라서 자기들이 가서 이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떡을 사와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불가능한 사명을 받는 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인간의 자원으로 불가능하게 보이는 상황은 단순히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어 보이는 과제를 만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되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준비되었다고 보이면 그 불가능한 일을 하실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이 비록 보리떡 5개와 물고기2마리같이 심히 미약하고 작은 것일수 잇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에 붙잡힐 때 놀라운 능력이 되어 나타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나의 부족한 자원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영적인 눈이 닫히지 않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종종 나의 보잘것없는 자원이 하나님께서 하기 원하시는 일을 위한 출발점이 되곤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처리 할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이성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무한하고 확실한 약속을 제한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5.필요를 고려하라

    왜 예수님께서는 수고스럽게 이 사람들을 먹이셨습니까? 그 분은 그냥 그들을 제 갈 길로 보내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필요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우리 삶의 모든 측면, 영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우리는 교회가 예수님의 다른 말씀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네가 먹을 것을 주라는 명령을 너무 가볍게 받아들이는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이 주린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긍휼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지난 50년 동안 우리가 헌금한 돈의 1퍼센트만이라도 배고픈 사람들에게 주었다면, 아마 복음은 전 세계에 더욱 확장되었을 것입니다. 극도로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사람의 삶을 온전하게 하게 위해 애쓸 때 우리는 결코 모두 영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육적인 필요도 함께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 박찬성 2014.03.18 13:45
      나에게 주신 떡5개와 물고기2마리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주신것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주님께 내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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